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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12궁시대 상달 3일
글쓴이  선장
날 짜
08-12-29 10:09
조회(4130)
재야사학계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천문학적 관점에서는 우주의 역사를 2000년 단위로 끊어서 2000년마다 한 시대로 보고 이름을 붙인다.
 
이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 사자궁시대, 거해궁시대, 음양궁시대, 금우궁시대, 백양궁 시대, 쌍어궁시대, 보병궁시대, 마갈궁시대, 인마궁시대, 천갈궁시대, 천창궁시대, 쌍어궁시대로 구분하는 12궁시대이다.
 
12궁시대는 12간지에서 나온 것으로, 사자궁시대는 자(子, 쥐)에, 거해궁시대는 해(亥, 돼지)에, 음양궁시대는 술(戌, 개)에, 금우궁시대는 유(酉, 닭)에, 백양궁시대는 신(申, 원숭이)에, 쌍어궁시대는 미(未, 양)에, 보명궁시대는 오(午, 말)에, 마갈궁시대는 사(巳해, 뱀)에, 인마궁시대는 진(辰,용)에, 천갈궁시대는 묘(卯, 토끼)에, 천창궁시대는 인(寅, 호랑이)에, 쌍어궁시대는 축(丑, 소)에 해당한다.
 
이 관점에 의하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12,000년 전이라 한다.

이 시대는 사자궁시대에 해당하며 12간지는 자(子)에 해당한다고 한다.
12간지의 자는 시작을 의미하며, 1년으로 치자면 동지에 해당한다. 동지는 겨울의 긴 밤을 끝내고 시작의 눈을 뜨는 때로서 역사를 시작함을 의미한다.
 
이고선이 쓴 심당전서(心堂全書) 단서대강(檀書大綱)의 삼황개국기(三皇開國紀)에는 환인 천제가 나라(桓國)를 세운 날을 360 갑자(甲子, 桓紀 9199년) 상달(上月) 3일이라고 하였다.
 
환웅 천왕이 나라(神市. 배달나라)를 세운 날도 4321년 갑자(神市紀 5898년) 상달 3일이라고 하였다.
 
단군조선의 전신인 단국(檀國, 청구)을 자오지 환웅(치우천왕)이 세운 날도 신시개천 1261년 갑자 상달 3일이라고 하였다.
단군왕검이 장가든 나라인 웅심국은 환인 천제의 대를 이어오는 나라로서 단군왕검의 처(하백녀)의 조부 천일태제(天一泰帝)의 나라였다고 한다. 천일태제는 한국개천 5941년, 신시개천 1621년, 단국개천 361년 되는 해를 갑자개천원년(甲子開天元年) 상달 3일에 나라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배달나라로 하였다고 한다.

재야사학계에서는 환국, 신시, 단국, 배달나라 모두가 왕조를 세운 시대는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상달 3일을 나라를 세우는 날로 잡았다는 것은 상달이 언제인가를 볼 줄 아는 천문학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각 나라가 나라를 세운 당시에는 자월(子月, 11월)을 세수(歲首, 첫 달)로 삼고, 동지 날을 원일(元日, 첫 날)로 잡았으며, 동짓달을 시작한 달로 보았다고 한다.
 
이렇게 11월 상달(지금은 10월을 상달로 한다)을 여러 나라를 거쳐 오면서 수천 년 동안 지켜왔음에도 불구하고 마고의 개천년대와 개천일은 사서에 기록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으로부터 14000~12500년 전 사이에 지구가 기상이변과 화산폭발로 인류가 전멸했으며, 이 때 살아남은 사람으로는 대서양 쪽에서는 멜기세덱과 태평양 쪽의 마고를 설정하고 있다.

멜기세덱은 성경의 창세기에 나와 있고, 마고는 『부도지(符都誌)』와 중국의 여러 기록에 나와 있다고 한다.
 
인류역사의 시작을 12간지의 자(子)로 본다면, 이때에 해당하는 12궁 시대는 사자궁 시대이다.
사자궁 시대는 약 12000년 전으로, 멜기세덱과 마고시대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렇게 역사의 시발을 사자궁 시대에서 시작하면, 9199년 전에 환국을 세운 환인천제의 시대는 거해궁 시대에 해당하고, 5898년 전에 신시를 세운 환웅천왕의 시대는 금우궁 시대에 해당하며, 4333년 전에 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의 시대는 백양궁 시대에 해당한다.
 
현재는 쌍어궁 시대를 지나서 이제 막 보병궁 시대로 들어섰으므로. 현재에서 과거로 12궁 시대를 역추적하면 마고시대에 다다를 수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마고의 개천연대는 12000년~12500년 전 인 BC10000년~BC10500년 상달 3일로 잡아야 한다고 한다.
 
1.2.2 한민족이 세운 최초의 국명 '마고지나(麻姑之那)'
 
재야사학자들은 동이(東夷)는 한민족의 직계 조상이며, '마고'가 신시를 세우고 그의 후손인 '황궁'과 '유인'과 '환인'과 '환웅'의 대를 이어 '황제'가 역사에 나오기 이전까지 중원 땅을 다스린 인종은 동이 이외에는 없었으며, 그들의 문명이 동이문명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의하면, 태초에 동북아시아에는 동이족만이 살고 있었으며, 그들은 천문을 시작하였고, 하늘에 제사 지내기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시장을 열어 한 곳에 모이니 이를 신시(神市)라고 하였다 하였으며, '동이문명'의 탄생을 역경(易經)에서는 지화명이(地火明夷)에서 인용하였다. 그리고 그 뜻을 “땅위에서 불을 밝히는 것이 동이”라고 해석하였다.
 
또한 역경에서 동이의 '지화(地火)'가 사국(四國)을 밝힌다고 보고 지화, 즉 땅에서 불을 밝히는 것이 바로 문명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리고 이 일을 최초로 한 사람들이 동이라 하였다.
재야사학자들은 마고가 신시국을 세울 때, 후손을 하나로 결속시킨 사상이 바로 해혹복본(解惑復本)이었다고 한다. 해혹복본의 뜻은 “의혹을 풀고 원래대로 돌아가라"는 주의주장이다.

한편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4국'은 한국, 일본, 중국 세 나라와 이들 세 나라에 기초를 두면서도 한국이나 중국이나 일본도 아닌 제3의 나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들은 아직 '제4국'이 출현하지 않은 이상, 지금도 이 괘의 효력은 유효하다고 보고 앞으로 생겨날 제3의 나라는 3국이 연합하여 만들게 될 미래형의 국가로 해석하였다.

그들은 앞으로 <새로운 신시>를 탄생하게 할 뿌리가 될 시원문명(始原文明), 즉 새로운 시대를 밝힐 '지화'를 동이문명에서 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역사학이나 고고학에서 동이문명을 황하문명(黃河文明)이라고 왜곡했다고 한다. 즉 황하문명이 한민족의 조상이 인류 최초로 탄생시킨 동이문명임을 모르고 한족문명(漢族文明)으로 잘못 알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들은 그러한 오해가 생긴 이유를 두 가지로 나누었다.
 
그 첫째는 한민족이 황하유역을 포기하고 한반도로 철수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민족이동으로 보고 있으며, 그 원인은 한민족의 조상이 중국민족과 겨루어 오면서 사실상 진시황 초기에 조선이 멸망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에서 찾고 있다.
 
한편 두번째 이유는 동이가 마고지나(麻姑之那), 환국(桓國), 신시(神市), 조선(朝鮮)으로 국명이 바뀌면서 최초의 이름인 '마고지나'를 보전(保傳)해 오지 못한데 원인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재야사학자들에 의하면, '마고지나'의 문명은 우리 최고의 조상인 '마고'에 의하여 시작되며, 그 연대는 지금으로부터 12000년 이전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 때가 최초로 세운 신시국가시대였다고 한다. 신시국가는 오늘날의 국가체제와 다른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며, 그것을 초국가체제라 한다면 오가(五加)체제에서 마고시대의 초국가체제를 유추할 수 있다고 한다.
 
이고선이 쓴 ‘조선기’는 BC 2333년에 단군왕검이 그의 장인인 '지일태제(地一泰帝)로부터 '배달나라'를 인수하였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BC2311년에 ‘배달나라'가 국호를 '조선'으로 바꾸었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인구가 불어나서 오가체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재야사학자들은 마고지나가 우주의 원리라고 주장되는 삼태극 원리 위에 세워졌다고 보고 있다. 삼태극의 원리는 음양조화의 원리이며, 이 원리를 원시신앙으로 발전시킨 존재가 바로 마고였다는 것이다. 삼신신앙의 기원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이 멸망하고 나서, '부여'가 건국되고, 이어서 '고구려'가 건국되었다. 이들 나라가 멸망한 이후에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선포한 '고려'가 건국되었다.
재야사학계에서는 이렇게 역사가 흘러가면서 여러 나라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곤 하였지만, 단 하나 사라지지 않은 것은 ‘마고지나'라는 나라 이름이었다고 한다. '마고지나(麻古之那)'란 '마고의 나라'라는 뜻이며, 그 증거가 『고려사(高麗史)』에 실려 있다고 한다. 더욱이 그들은 고려 때에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부르는 국명과 백성이 부르는 국명이 따로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즉 고려는 외교문서에 나오는 국명이고, 백성이 부르는 진짜 이름은 마고지나(麻古之那)였다는 것이다.

고려사 세가 충혜왕조에 ‘마고지나'가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제28대 임금인 충혜왕은 조선의 연산군에 버금갈 만큼 타락한 폭군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고려는 원나라에 종속되어 있었으며, 충혜왕 역시 친원파들의 모략에 의하여 원나라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 원나라로 압송되었다.
 이후 왕은 원 황제에 의해 귀양을 명령받고 먼길을 떠나다가 중간에 독살당했다고 한다. 이 소문이 고려에 퍼져 백성들 사이에는 아야요(阿也謠)라는 노래가 유행하였다. 그 노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阿也 '麻古之那' 從今去何時來
아아 '마고의 나라' 이제 떠나가면 언제 돌아오려나"
 
재야사학자들은 여기서 마고지나라는 대목에 주목하고 있다. 즉 당시 사람들은 고려가 국가로서 존립의 기반이 되는 독립성과 자주성을 상실한 채 원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고려가 당나라에게 멸망한 고구려에서 나온 명칭이므로 고려가 언젠가는 당나라에게 멸망한 고구려의 전철을 밟게될 것을 두려워하였다고 본다.
 
 따라서 고려의 백성들은 고려라는 명칭보다 마고지나라는 칭호를 선호하였으며, 마고지나는 마고가 인류 최초로 세운 신시나라였으므로 진시황 8년 조선의 멸망과 함께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 백성들은 역사적인 유물이 된 '마고지나'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고지나'는 언젠가 회복해야 할 고려 사람들의 근원상징(根源象徵)이며, 땅에서 우주의 중심과 일치하는 곳에 우리의 조상 마고 할머니가 세운 최초의 나라, 지금의 나라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나라였으며, 영토에 대하여 개념정립이 전혀 되지 않았던 나라,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모이는 사람들의 나라, 초국가적인 나라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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